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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메르인들...

스타도나 2007. 8. 5. 18:21
학교에서 배웠던 수메르인들? 그들은 한국인이었다.

 
수메르인들은 한국인들  이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부른 나라, 즉 이라크 이란 북한은 모두 인류 초고대 문명의 발상지란 점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부시는 지금 이런 세 나라만 골라 '악의 축' 운운하면서 공격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를 미국의 '역사 콤플렉스'라고나 해 두자.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지금 발견되고 이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수메르와 한국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이것이 수메르 문제의 화두이다. 그들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남긴 문자이다.   어느 두 언어가 같은 계통이라면 먼저 언어의 특징이 같아야 하고, 문법 구조가 같아야 하고, 유사한 언어 특히 수사가 같아야 한다. 우리가 인도와 유럽의 언어가 같다고 하는 것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 인도 샨스크리트어가 모두 이 세 가지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물론 수메르어와의 비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생각키로는 이세가지 점에서 거의 완벽하게 같은 언어는 우리 한국어가 아닌가 한다.  
먼저 언어의 특징이란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인데 교착언어란 우리말의 주어나 목적어 다음에 '은, 는, 이, 가' 등이 붇는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와 인도어는 일단 교착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수메르어와는 그 특징에 있어서 같지 않다.   다음으로 문법 구조에 있어서 수메르어는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이는 영어 혹은 중국어와는 다르고 우리말과는 같은 구조이다.
 
 마지막으로 수사(數詞)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데 <삼국사기>에는 고대 우리말의 수사가 남아 있다.   필자는 수메르 수사와 우리 고대 수사를 비교 한 바 있으며, 최근 히브리대학에서 수메르어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 온 조철수 교수가 더욱 심화연구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메르어는 처음 1을 '아스 as'라고 하는 데 이는 <삼국유사> 고(古)한국어의 그것과 일치한다. 처음 빨래를 '아시 빨래'라고 하며 아침은 '아사'라고 하는 것이며 해 뜨는 아침을 의미하는 Asis가 여기서 유래한다.-펀주: '아'는 아침 아이 에서 보이듯이 시작을 뜻함.아 -> 하 (하나,한)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짐.- 언어 이외에 수메르 유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 탑이다. 물론 피라밋의 유래이며, 구약성서의 바벨탑의 전신이 다름 아닌 지구라트이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은 지금 터키 그리고 몽고 지역까지 수메르의 유적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원전 3500년경 과연 그 찬란한 고급 문명을 가지고 있던 지역은 과연 어딘가?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가람기획)는 로마 사람들이 왜 “빛이 동방에서 왔다”고 생각하였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책이다.저자는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그 동안 메소포타미아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보였다.직접 유적 발굴에 나서 큰 성과를 이룩하였는가 하면 유적의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 동안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수메르 문명의 모체는 환국의 신교 문명!!

 

선천 소개벽 이후 중앙 아시아 동쪽에서 태동한 환국의 문화는 인류사의 제2변기에 동,서 사대문명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대한 증거는 최근 120여년 동안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약 5,500년전에 오늘의 서양문화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연구가(울리,크래머,EH 번즈)들의 결론은 수메르 민족이 고산족의 특성을 가지며 동방에서 왔다는 말을 한다. "하늘에서 내려왔다", " 하늘 산을 넘어왔다"의 기록은 천산 산맥을 넘어서 왔다는 환족의 특성을 보여준다.

 

왕위가 하늘에서 내려온 승화된 교관과 왕권이 하늘나라에서 부여된 후에 인간은 예성과 신성한 규범을 완수했다.(수메르 제 1 왕조의 '엔릴영웅 비문')

 

이 수메르 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 같이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썼다. 또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랏이라는 제천단과 한문화의 흔적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들에 뚜렷이 남아있다.(김상일,[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

 

 

(수메르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무수한 점토판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

에 소장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 주인인 인디언이 동북아에서 베링 헤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언어,혈액형, 체질, 치아 모양등의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이미 밝혀진 것으로서 미국인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G. 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임시자료 보관 게시판 480번  참고)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선 탄소 측정에 의하면 이것은 약 9천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송호수 교수는 1982년 10월 7일에 현지 조사를 하여 미국 워싱턴 인디언 박물관에는 이외에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와 동일 한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지적한다.[(한민족의 뿌리 사상).26쪽) 더욱 놀라운 것은 미 대륙의 인디언이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는 그 모양과 무늬가 한국의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한국의 신석기 토기와 구분 할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선천의 마지막 소개벽 이후 1만여년 전 당시에는 베링 헤협이 육교 역할을 하여 이곳을 타고 동방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은 동서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러한 동방 천지의 광명을 생활해 온 환족의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문명 개벽기의 대 이동은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연결되어 있었던 약 25,000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밝(불함)'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장 오래된 개념이라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 한 민족속에 '밝(광명)'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라고 했다.[불함문화론]

 

그런데 '한'으로써 세계 문명의 도처에서 그 기운을 찾아보면 보다 선명하게 그 모습이 뚜렷해진다. '한'이라는 말은 7천년 이상 된 언어로써, 우리 문명과는 그 출발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인류 문명과 그 시원을 같이하는 언어이고, 세계 원시문명이 남아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예외없이 발견된다. '한'이라는 말은 신의 이름,군장, 거룩한 지명 등에 나타나며, 그 퍼져있는 지역도 매우 넓다.  수메르 어의 '안(An), 아메리카 인디언의 '칸(Kan)', 몽골어의 '칸', 버마 친족의 '한', 인도 산탈어의 '한스한신', 필리핀 이고로토의 '한'등, 문명이 오래 된 민족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한'을 자기들 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

23-26쪽)

이는 모두 환(桓)->한(韓)정신이 고대 동방 환국 민족의 동서 이동과 함께 이루어진것이다.이러한 여러가지 역사적 증거에서 우리 동방 민족의 역사가 최대한 1만년을 상회한다는 엄연한 사실이 현실적으로 실증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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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어와 한국어 발음과 뜻 비교

슈메르어 발음과 과 뜻

한국어 발음과 뜻

아누(Annu) 최고신

하느님 上帝

안(An) 하늘, 天

하늘, 天

기르(Gir) 

길 (Gil) 路

라 (Ra) ...에서   

로 (Ro) 조사 (助辭)

아비 (Abi) 아버지

아비, 父, 지아비 (夫)

움마 (Uhma) 엄마

엄마 (Uhma) 母

니므 (Nim) 님, 任

님 (Nim) 사람

바드 (Bad) 밭 田 

밭 (Bat)밭, 田

나 (Na) 나, 일인칭

나 (我) 일인칭

그 (Ge) 3인칭

그 (Ge) 3인칭

이. 1일칭 

이. 지시대명사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BC 2500년 전
수메르의 씨름모양의 향로

고구려 각저총(角抵塚) 벽화

 


초가잠빌의 지구라트, 에람,
[BC.3000년경]
 

만주에 있는 배달문명 피라미드 들의 일부
독일인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가 찍은 것. 사진 보낸 직후 중국당국에 �겨남.

 

-정교일치: 왕은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었으며, 신권 정치가 실시되었다.

-제천의식: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다.

-천문학: 인간의 운명이 천체 운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태음력: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출처 : 다니
글쓴이 : dan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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