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료
[스크랩] 단군조선의 제후국 `은나라 유물` (도철문 = 치우천자)
스타도나
2009. 7. 24. 22:54
근자에
은나라 유물중 제기 등에 그려진 치우문양(도철문)이 치우천자와 상관없는
즉 '용문양'이라던지 운운하는 자들이 많은데 아래 글을 읽어 보고
괘변을 중단하기 바란다....
아래 치우천자를 시조로 모시는 묘족 상징건물에는 모조리 치우문양이 그려져 있다
바로 은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도철문과 동일한 것으로 '치우천자'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래서 우리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제후국 '은나라 유물'
산동성에 있는 마차는 '동이' 즉 단군조선의 유물이라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서쪽 단군조선의 제후국 이었던 은나라 마차 유물은 당연히 단군조선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 치우천자의 도철문 청동유물
- 은나라 신하 '기자'가 단군조선 땅 서화에 살다가 인근에서 죽었다
누구의 역사인가 ?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 치우천자 도철문 청동유물

- 은허박물관










(출처)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산동성 발해해협) 3천년전 고조선에는 바퀴살 30개 짜리 "전차"가 있었다
중국 산동성 북쪽 발해해협 연안 장도에는
3천년전 동이의 유물인 고조선의 전차가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오랬동안 수몰된 발해만 연안의 흔적을 찾아 현지를 탐문 조사하신
장동균 선생님의 "신시본토기" 내용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하 단순참고(유물위주)바랍니다
- 출처 : 장동균 저 "신시본토기" 409~410페이지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단군조선의 제후국 / 기자가 살았던 은나라의 유물 ?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당연히 동쪽 산동성 중심의 강력한 동이의 영향이지 않는가 ?
도철문의 주인공이 치우천자라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
--------------------------------------------------------------------
[작품정보] 지나에 있는 치우천왕의 귀면와(鬼面瓦)
- 출처 http://cafe.daum.net/gaebawi
현 지나의 00 성의 용마루에
말 위에서 활을 당기는 무사 와장군(瓦將軍) 형상의 막새가 있는데,
이것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바로 악귀를 쫓는 치우천왕의 형상이다.
(아직 진행 중인 작품의 내용이라, 공개치 못 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5국시대( 가야, 왜 포함) 이전부터
도깨비얼굴 곧 치우천왕 상의 기와를 큰 건물 지붕에 올려 놓았다.
고구려의 수막새,
반와당(半瓦堂),
내림새막새,
신라의 수막새,
백제의 벽돌,
일본 법륭사(호우류지),
청나라 시대의 귀면와
등의 여러 종류의 기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와들을 보면,
거친 듯하면서도 힘이 넘쳐서,
고대 우리 선조들의 굳건한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했던 치우천왕 상의 기와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시들었다.
그것은 곧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국력이 급격히 쇠잔해 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원형마저 변질되기 시작했다.
즉 치우천왕 상을 나타내는 도깨비 기와가
괴상한 사람의 몰골을 닮은 유치하고 조잡스러운 얼굴로 다시 바뀐 것이다.
최근에는 다시 그 얼굴이
수(壽), 복(福), 희(禧) 등의 글자와,
주역(환역) 무늬,
꽃잎 따위의 바래기 기와로 변했다.
즉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군신(軍神)과 축귀(逐鬼)의 의미를 가졌던 치우천왕 상의 도깨비 기와가
이제 지붕 장식을 위해 올려놓는 무의미한 기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천과 함께
치우천왕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잃어버린 우리의 민족성이 왜소해져,
수. 당. 몽골. 거란. 왜 등으로부터 다수의 침략을 허용하는 결과를 빚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4자성어(四字成語)를 되새겨야할 중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적과 유물, 그리고 정신문화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 복원이 되어,
과거 치우천왕의 시대처럼 세계에 우뚝 서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에서 인용-
(완)




(그림) 한재규 화백의 치우천황

은나라 유물중 제기 등에 그려진 치우문양(도철문)이 치우천자와 상관없는
즉 '용문양'이라던지 운운하는 자들이 많은데 아래 글을 읽어 보고
괘변을 중단하기 바란다....
아래 치우천자를 시조로 모시는 묘족 상징건물에는 모조리 치우문양이 그려져 있다
바로 은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도철문과 동일한 것으로 '치우천자'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그래서 우리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제후국 '은나라 유물'
산동성에 있는 마차는 '동이' 즉 단군조선의 유물이라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서쪽 단군조선의 제후국 이었던 은나라 마차 유물은 당연히 단군조선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 치우천자의 도철문 청동유물
- 은나라 신하 '기자'가 단군조선 땅 서화에 살다가 인근에서 죽었다
누구의 역사인가 ?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 치우천자 도철문 청동유물

- 은허박물관










(출처)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산동성 발해해협) 3천년전 고조선에는 바퀴살 30개 짜리 "전차"가 있었다
중국 산동성 북쪽 발해해협 연안 장도에는
3천년전 동이의 유물인 고조선의 전차가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다
오랬동안 수몰된 발해만 연안의 흔적을 찾아 현지를 탐문 조사하신
장동균 선생님의 "신시본토기" 내용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하 단순참고(유물위주)바랍니다
- 출처 : 장동균 저 "신시본토기" 409~410페이지


(은허유적지 발굴 유물)
단군조선의 제후국 / 기자가 살았던 은나라의 유물 ?
http://news.china.com/zh_cn/domestic/photo/11026066/20050526/12347663.html
http://www.ha.xinhuanet.com/add/2003-04/17/content_406686.htm
당연히 동쪽 산동성 중심의 강력한 동이의 영향이지 않는가 ?
도철문의 주인공이 치우천자라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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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지나에 있는 치우천왕의 귀면와(鬼面瓦)
- 출처 http://cafe.daum.net/gaebawi
현 지나의 00 성의 용마루에
말 위에서 활을 당기는 무사 와장군(瓦將軍) 형상의 막새가 있는데,
이것은 두 말 할 필요없이 바로 악귀를 쫓는 치우천왕의 형상이다.
(아직 진행 중인 작품의 내용이라, 공개치 못 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5국시대( 가야, 왜 포함) 이전부터
도깨비얼굴 곧 치우천왕 상의 기와를 큰 건물 지붕에 올려 놓았다.
고구려의 수막새,
반와당(半瓦堂),
내림새막새,
신라의 수막새,
백제의 벽돌,
일본 법륭사(호우류지),
청나라 시대의 귀면와
등의 여러 종류의 기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와들을 보면,
거친 듯하면서도 힘이 넘쳐서,
고대 우리 선조들의 굳건한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했던 치우천왕 상의 기와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시들었다.
그것은 곧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국력이 급격히 쇠잔해 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원형마저 변질되기 시작했다.
즉 치우천왕 상을 나타내는 도깨비 기와가
괴상한 사람의 몰골을 닮은 유치하고 조잡스러운 얼굴로 다시 바뀐 것이다.
최근에는 다시 그 얼굴이
수(壽), 복(福), 희(禧) 등의 글자와,
주역(환역) 무늬,
꽃잎 따위의 바래기 기와로 변했다.
즉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군신(軍神)과 축귀(逐鬼)의 의미를 가졌던 치우천왕 상의 도깨비 기와가
이제 지붕 장식을 위해 올려놓는 무의미한 기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천과 함께
치우천왕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잃어버린 우리의 민족성이 왜소해져,
수. 당. 몽골. 거란. 왜 등으로부터 다수의 침략을 허용하는 결과를 빚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4자성어(四字成語)를 되새겨야할 중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유적과 유물, 그리고 정신문화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 복원이 되어,
과거 치우천왕의 시대처럼 세계에 우뚝 서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에서 인용-
(완)




(그림) 한재규 화백의 치우천황

출처 : 박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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