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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도경에 기술된 고려의 위치.(Location of Goli was correctly depicted in Gaolitujing)

스타도나 2010. 12. 12. 18:50

서긍은 그의 고려방문기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했는데 많은 역사한다는 사람들사이에서도 설왕설래 하고 있으니   

 

남송의 徐兢이 지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왕성을 설명한 글을 보면, 

 

군읍, 

州,縣之建。實不副名。特聚落之繁處。自國之西北。與契丹,大金接境。粗有壘壍。其東南濱海。亦有建於島嶼者。西京最盛。城市略如王城。又有三京四府八牧。又爲防禦郡一百一十八。爲縣鎭三百九十。爲洲島三千七百。皆設守令監官治民。惟牧守都護。公廨數楹。令長則隨所在。舍於居民。夷政租賦之外。無健訟在官者。公田不足以資用。則亦仰給於富民云。

 

고려의 서북에 거란과 함께있고 금나라와 경계를 접한다. 성채가있는데 동남에 빈해가 있다.역시 섬들도있다. 오직 서경이 최고로 번성하기가 개경 왕성과 같으며 3경4부 8목이있다.(하략) ..

 

고려는 서북에 거란이있고 동남으로 빈해가있다는 위치가 아래 대청광여도에서 일치하며 바로 개경이 청주,대성임을 일수있다.

 

濱海는 어디인가?

濱州를 말하는것이며 빈주에 접한 바다를 말하는것이다.

아래 대청광여도에 빈주가 보인다. 

 

 

영주와 빈주를 합쳐 영빈해라 부르며 대체적인 위치는 하북남동부와 산동북을 말한다.

 

아래 그림이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존속한 나라들의 실제 위치이다.  

지리지가 아닌 사서상의 전쟁기록으로 보면 고려와 각축을 벌인 요나라의 남부국경은 산동북을 넘지못하고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 역시 산동중부를 넘지못하였다.요나라와 금나라와 전쟁을 한 북송 역시 북경지방을 차지 했었다는 지리지의 기록은 신빙성이 없어보인다.

 

과거의 대륙엔 현재의 국경선이 없기때문에 요나라가 고려를 없애고 송나라와 접전을 한것이 아니라 고려의 왕성을 공격하지 않고 주변지대로 남하하여 송과 접전을 한것으로 해석하여야한다.

지금의 중국사에서 거란과 송의 중간에 존재한 고려라는 나라를 지워버리고 송과 거란 혹은 금나라와의 직접적 전쟁기록은 명나라의 사가들이 대대적 조작을 한것으로 보이는것이다.  

 

 

 

고려사 인종조 기록.

則我將何辭以拒,苟知海道之便,則小國之保全,難矣,而淮南兩浙,緣海之地,得不慮其窺覦耶,苟爲不然,小國,豈敢恬不從命,玆事實大,非敢飾言,惟使副,曲察情衷,少回雅意,歸奏闕下。하략

 

윗 처럼 송이 금을 치기위해 고려에 길을 빌려 달라는 고려사와 송사의 기록을 도외시한 사학계의 주장이라면 송나라는 한반도 아래에 있어야한다.

 

이로서 한국사학계에서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국사교과서와 한국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스스로 증명하게 되는것이다.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서의 기록은 엉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운영자 심제.

 

출처 : 잃어버린 역사,보이는 흔적
글쓴이 : 心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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