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에게도 또 다시 이런 아내가 있었으면
2007. 11. 6. 22:09ㆍ아름다운 글들
<모두다사랑하리님께> 11월 6일의 정아(靜雅)입니다. 한시적으로 님의 말씀대로 제 詩, 지금부터 자정까지만 스크랩 열어놓겠습니다. 완전히 열어놓지 않는 이유로는 제가 님의 소감의 답글에 적어드렸구요. 내일이 다가오면 다시 닫혀질 것입니다. 스크랩 하세요. 고맙습니다.
2007年 1月 1日에 업데이트 했던 詩
나에게도 또 다시 이런 아내가 있었으면 / 이 현정(靜雅)
이른 아침의 눈부신 햇살
목이 칼칼하다
머리맡의 손을 뻗어보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다
목이 마르다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으면
냉장고를 들여다본다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 안
역한 냄새가 난다
목이 마른데
마실 물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손에 잡히는 것이 무얼까
잘 조준이 되지 않는 리모콘
뉴스가 보고싶은데
시끄럽게 쪼아대는 토크쇼의 채널에만 고정된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양말이 어디쯤 있었을 텐데
제 짝을 찾기가 힘들다
하나, 오래 된 낡은 양말 한 켤레
어디에선가 참 많이 보아온 그 무늬
그녀가 나에게 신겨주었던 양말
문득 신어보니 왼쪽 구멍이 나버렸다
바늘과 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냥 신어보기로 했다
바깥 창문으로 들어오는 내음
점심을 차려보고 있는 옆 집들의 풍경
나도 배가 고프다
그 누군가 내 곁에 있어주었다면
희미한 형체의 그 내음이 그립다
집 밖을 나서다
오고가는 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늘 그렇듯이
작은 몸집의 어느 아가씨는
한 남자에게 매달려 폴짝거리며 팔짱을 끼네
옆의 그 남자
무언지도 모를 행복한 미소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어
나에게도 그러한 아내가 필요해
가게엔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군
주머니의 작은 지폐 몇 장
끄집어내어 살 수 있는 것은 우유 하나와 라면 하나
그리고
쓰레기봉투 한 묶음
돌아오는 길은 아직도 하얀 눈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버려 그 누군가의 발자국들은
어느새 끼워 맞출 수 없는 퍼즐 모양처럼
그렇게 따로 또
키(key)를 찾을 수가 없다
비밀번호가 무엇이었던 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옳지
그녀의 생일
1024
아주 오래 전엔
잃어버린 키(key)와
잊어버린 비밀번호
아무리 그러해도 전화 한 통이면 다 괜찮다
호호거리며 웃어주었던 그녀가 내 곁에 있었을 때엔 아무 것도
문제될 수가 없다
도어(door)는 흐느적거리며 열리곤
덜컹거리며 닫히며
고요한 방 정적이 이내 깨어져 버려
가스 불에 라면을 올려놓자
한 봉지의 찬 우유도 마셔보자
칼칼한 목이 어느새 시원해져 가
우유를 마시기 전에 한 마디
꼭꼭 씹어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면 체하고야 만다며
그러한 그녀의 잔소리가 그립다
리모콘을 다시 집어 들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의 채널
진한 화장을 하고
옆 사람에게 가끔씩 눈 흘김을 하고 있는 그녀는
누군가를 참 많이 닮아있다
오늘도 그 시간에 나타나는 그녀의 얼굴
그녀가 나를 보는 것인지
내가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인지 늘 헷갈려
참 작은 공간인 나의 공간에서도
늘 그녀는 지금 저 화면 속에서처럼
눈 흘김을 자주 하곤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 하군
나를 찾아오던 그 날부터
나를 떠나가던 그 날까지
그녀의 옆 왼쪽 보조개는
더욱 더 옴폭 들어가 버린 것이 군
채널을 돌리자
건전지가 멈춰버려 그녀의 얼굴화면이 정지된 체
다른 곳으로 돌려버릴 수가 없다
나더러 어찌 하라고
잔인한 그 사람
이렇게 나를 보고 있으면서
내 그리움은 전하여지지 않는단 말이지
이제 화면을 꺼버려야겠다
퉁퉁 불어터진 라면
국물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오늘도 불어터진 라면 몇 젓가락으로
배를 채우곤
쓰레기봉투로 들어가 버린 그 라면 덩어리
누군가 필요한 저녁
어둠이 밀려올 즈음
똑같은 오늘을 다시 경험하곤
이렇게 홀로 잠을 청하여 보다
옆집의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곤
작은 토닥거림, 시끄러움
이제 창문을 닫아버려야 할 시간
옆집에 사는 그 어느 남자처럼
나도 그러한 아내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작은 앞치마를 예쁘게 차려입었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내뱉은 말들
흔한 된장찌개의 냄새가 이젠 지겨워져
잘 가겠단 인사도 없이 저 문을 나서 버린 그녀
이제 그녀의 꿈은 지워야겠지
그러나
그래도 나에게도 그러한 아내가 다시 있었으면 좋으련만
팔베개를 하고 함께 잠이 들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구멍난 양말을 이제 벗어버리자
그런데
불은 누가 끄지
- 무단복제를 금합니다(모두 자작 글) -
출처 : 나에게도 또 다시 이런 아내가 있었으면
글쓴이 : 정아 원글보기
메모 :
'아름다운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운의 네잎클로버~~ (0) | 2007.11.15 |
---|---|
사람은 일생 동안 3권의 책을 쓴다 (0) | 2007.11.13 |
시월의 마지막 밤- 백야 이효녕님 (0) | 2007.10.30 |
처음이자 마지막 내 사랑아 - 풀잎소녀/유필이 (0) | 2007.10.26 |
행운의 열쇠를 드립니다. (0) | 2007.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