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교과서 해설서의 독도영유권 명기 문제로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독도문제에 관심은 있으나 블로그에 쓰는 것은 처음이다. 감정론을 배제하고 독도 문제를 살펴본 후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어느나라 땅이었느냐 보다 현재의 영토를
정한 2차대전 이후 연합국측이 한국과 일본의 영토를 정할 때의 사정이다.
이때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정리해 본다.
이 내용은 일본 사이트
http://www.ne.jp/asahi/cccp/camera/HoppouRyoudo/index.htm 를
참고하였다.
이 사이트는 러시아와 일본이 분쟁중인 쿠릴열도 (일본측에서 말하는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 일본측 주장에 관해 비판적으로 쓴 곳인데 북방영토 문제는 다음에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독도문제에 관해서는 중립적이면서도 일본측 주장에 비판적인 논조이다.
(예를 들어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억지라는 내용 등)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 하는 논란에 핵심이 되는 문서는 우선 일본이
2차대전후 신탁통치를 마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된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일본이 제주도, 울릉도, 거문도를 포함한 한반도에
대한 권리,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 조약에 독도를 포함해서 포기한다는 말이 쓰여 있지 않아서 일본 측은
독도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사용한다.
한국측은 이 조약에 쓰여진 섬들은 어디까지나 주요한 섬들일 뿐 국경선을
나타내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이 작성될때는 독도가 포함되었다가 없어졌다가
여러번 변경된 경위가 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원인이다.
그리고 결국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하지 않아 일본의 북방영토
문제의 불씨를 남긴 것은 물론 일본이 2차대전 전에 지배했던 사할린 남부
지방과 쿠릴열도 (캄차카 반도 앞 까지) 전체를 현재까지 "영토 귀속 미정"으로
취급하는 지도를 현재도 일본 교과서는 사용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즉 일본은 사할린 남부 지배는 포기했지만 소련/러시아가 먹은 것을 인정한
적이 없다는 태도임)
다시 독도 문제로 돌아와서 보면 2차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 사령부 (GHQ)는
1946년에 SCAPIN677 지령을 통해 일본의 통치 범위를 지정했다.
이때 독도는 일본의 통치 범위가 아니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은 한국 측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다. 1946년에 GHQ는 다시 SCAPIN1033지령을 통해
맥아더 라인을 설정하고 일본의 어업 범위에서 독도를 제외했다.
또한 1946년에 미국 국무성 육군성 해군성 조정 위원회(SWNCC)가 내놓은
구 일본 지배하의 영토, 섬들에 관한 처리 방침에도 조선의 독립을 확인함과
동시에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도 조선의 일부로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1947년에 미국이 작성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을 보면 일본이 포기할
대상에 거문도, 울릉도, 제주도와 함께 독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는 독도가 한국 영토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것 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47년에 일본측이 미국에 비공개인 동해와 태평양의 섬들에 관한
문서를 미국측에 제출했다. 문서의 내용은 현재까지 비공개이지만 미국측의
태도가 바뀐 결정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결국 1947년까지의 평화조약 초안은 독도를 일본이 포기하는 내용인 상태로
변경은 없었고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 총선거가 실시되어 1948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건국 되었다.
문제가 골치아파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인듯 하다.
중국에서 중화민국 정부가 패배하고 대만으로 쫓겨난 후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당연히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졌다.
1949년 11월 주일 정치고문이었던 미국인 윌리엄 시볼트가 독도를 일본땅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유는 공산주의에 대항할 자본주의
진영의 방패를 강하게 할 목적으로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 영토가 많은 것 보다
일본 영토가 많은 것이 미국측으로서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에 한국이 공산화 통일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동해상의 중요한 거점인
독도를 공산주의 진영에 빼앗기게 되는 셈이므로 이를 걱정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시볼트의 의견을 받아들여 1949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에는 일본이
보유하는 섬 리스트에 독도가 추가되었다. 이때 미국 정부는 독도를 일본
땅으로 할 속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1950년 8월에 미국 국무성 고문으로 취임한 존 덜레스에 의해 평화조약 초안이
대폭 변경되었다. 세세한 섬들의 리스트가 사라졌으며 단순히 Korea에
관해서만 쓰여지게 되었다. 독도에 관한 언급도 사라졌다.
1950년 가을에 호주 정부가 독도가 어디에 속하느냐에 관한 질문에 관해 미국
국무성측은 일본에 속한다고 답변했다.
1951년에 영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작성한 평화조약 초안에는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영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내놓은 초안에는
독도에 관한 언급이 사라져 있다.
영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내놓은 초안에 관해 1951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측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 국무성은 한국 대사에게 독도는 1905년부터
시마네현 관할하에 있으며 한국의 영토였던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 내용은 일본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답변하였음이 분명하다.
이 상태로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서명 되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1952년 독도를 일본의 지배 범위 밖으로 지정한 맥아더 라인을 기준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 (이승만 라인)을 그어서 독도를 한국 지배하에 넣었다.
이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서명된 후이지만 발효 전이라 일본 정부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을 통치하고 있었던 GHQ는 이승만 대통령의 이 조치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했다.
결국 전후 사정을 정리해 보면...
1.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원래 독도를 한국땅으로 할 생각이었다.
2. 중국이 공산화 되고 공산주의의 위협이 증대하자 일본 땅으로 하는 것이
미국에 국익에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독도를 일본 땅으로 넣으려 했다.
그리고 이 근거를 미국측에 제공한 것이 정식 독립하기 전의 일본 정부이다.
3.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이 1951년 8월 한국이 공산화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측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만드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4. 1952년 이후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후 미국은 사실상 한국의 독도
지배를 묵인하고 이후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독도 문제의 본질을 살펴 보면 결국 한국은 미국에게 우롱 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