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만리장성은 고려가 쌓았다

2009. 7. 24. 23:41역사 자료

《고려사》에 의하면 이 성의 총길이는 1,000리에 걸치는 석성(石城)이며, 높이와 두께는 각각 25척이

라 하였다. 본래의 명칭이 어떠했는지 기록상 분명치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속칭 ‘만

리장성’이라 했고, 현재는 흔히 ‘고려장성(高麗長城)’, 또는 ‘천리장성’으로 불린다.

1) 高麗史6卷-世家-靖宗  是月築長城於''西北路''松嶺 東以扼邊寇之衝.

고려가 長城을 축조(築造). 長城=萬里長城 (扼:누를액,衝:찌를 충) 西北路 松嶺

 - (중국고금지명대사전)
“松嶺 - 在奉天省 西境, 遼河 西岸. 其脈起於陰山(脈: 줄기).東南岐出.(중략).”

松嶺(송령)은 음산의 줄기로써 동남으로 뻗은 가지 山脈(산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섬서
성 서북 황하 연변에 있는 음산의 줄기가 요하 서안까지 뻗어있다는 것이다.


봉천성은 바로 관내도 지역이었기 때문에 봉천성의 서쪽 경계지역이 되는것이며, 요하는 바로 황하를

말하는 것이다.이 요하 즉 황하의 서안에 “음산”이 있기 때문에 이 음산의 일부분이라는 말이다.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장성을 축조했다는 말이며, 이곳의 북쪽은 중원으로 오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중원에 왕조에서는 이곳의 수비에 왕조의 운명을 걸다시피 했다.

 이 기록에서도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遼河(요하)”는 “황하”를 말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한 고려가 만리장성을 축조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2)高麗史3卷-世家-穆宗 癸未改西京爲鎬京.
♦半島(반도)내에서는 不可能(불가능)한 사건이다. 즉 서경을 “호경”으로 바꿨다는 말이다. “호경”이 반

도의 평양이라면 반도의 평양은 섬서성 장안이 되며 이 주위는 중원의 중심지였다는 말이며, 관내도였

다는 말도 되는 것이며, 또한 이 지역이 “중국”이었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호경은 섬서성 장안현 서남에 있으며, 石(서도)라고도 하며 周(주)의 왕

도 였다. 이러한 호경은후대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 “고구려의 평양성은 왕검성이며, 장안성이며,

 호경이요, 유경이며, 낙랑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사지리지(그 전의 역사서는 불문에 붙이더라도)를 보면 “동녕로 본고구려 평양성왈장안성,(중략)낙랑

지”라 기록하고 있다. 원사는 원나라때 편찬된 것이 아니며, 분명히 원을 멸망시킨 “명”나라때 편찬되었

을 것이다. 이러함에도 상기의 “호경”에 대한 고려사의 기록은 정인지 대학자가 자존심을 세우려고 대륙

장안의 지명을 차용한 것일까 ?

**유경은 은나라 도읍지이며 호경은 주나라 도읍지로 섬서성 서안(장안)으로 보면 무난합니다
천리장성의 축조는 일시에 축조된 성이 아니라 1014년(현종 5)에 동서북 방면 요새지에 부분적으로 성

책을 쌓았던 것을 1033년(덕종 2) 8월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가 왕명을 받들어 변계에 관방(關防)을

처음으로 설치하는 연결작업으로써 완결된 것이다.

3) 위치와 범위는  동쪽으로는  위원(威遠)·흥화(興化)·정주(靜州)·영해(寧海)·영덕(寧德)·영삭(寧朔)·정융

(定戎)·영원(寧遠) 및 그 부근의 평로(平虜)·맹주(孟州;지금의 孟山), 그리고 삭주(朔州)·운주(雲州;지금

의 雲山)·안수(安水;지금의 价川)·청새(淸塞;지금의 熙川) 등의 13성(《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절

요》는 14성이라 함)을 거쳐 함경도의 영흥(永興) 지역인 요덕(耀德)·정변(靜邊)·화주(和州) 등의 3성에

 연결되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어진다.

그러나 이미 1014년에 서북방면에는 용주(龍州)·철주(鐵州;지금의 鐵山)·안의진(安義鎭;지금의 龜城)·청

새진·위원진·인주(麟州)·영덕진 등의 성과 동북방면에서는 의주(宜州;지금의 德源)·영평진(永平鎭;지금

의 永興?)·요덕진·상음현(霜陰縣;지금의 安邊)·현덕진(縣德鎭;지금의 永興)·용진진(龍津鎭;지금의 文川) 

등의 성을 보축 또는 신축하였다.

4)최두환님의 대동여지에서 낙타전쟁에서 이해하기 쉬운 것만 약간 뽑았습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지리지 평안도에서 '옛장성을 세속에서는 만리장성이라고 했다'고 전해오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주목에서 '장성은 의주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 옛 국내성의 경계로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 흥화 정주 녕해 녕덕 녕삭 운주 안수 청새 평로 녕원 정

융 맹주 삭주 등 14성을 걸치고 요덕 정변 화주 등 3성에 이르러 동쪽으로 바다에 가까이 붙어있다. 총

길이 1000여리로 돌로 쌓았는데 높이와 너비가 25자씩이며 속칭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고 기록되어 있

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요즘의 감숙성 민현 서쪽에서부터 이어져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하란산 음산

에 이르며 거기서 동쪽으로 돌아 열하에 이르러 료수를 건넌다. 또 남쪽으로 동가강 압록강을 건너서 곧

장 조선의 황해도에 이른다. 이것이 진나라 때의 장성이다.'

고려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린주(麟州)는 옛 령제현이고 장성이 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린주는 섬서성 북쪽에 만리장성이 있는 신목현 북쪽에 있다' 고 했다 


 

5) <프랑스 신부가 쓴 중국대륙의 조선왕국 조선통사 (P뒤알드 지음. 최두환 역주해) 도서출판경남.

2007. 40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But the great Wall which the Creans had raised to defend themselves from the Tartars"

만리장성은 조선사람들이 타타르(달단)의 침략을 막기위해 쌓아올린 것이다. 

 

**산해관이란 지명과 함께 천하제일관이란 명칭을 만든 나라는  명이 아니라 조선으로서,  오랑캐의 침

입을 대비해 조선이 만리장성을 해변끝까지 연결하여 만든 조선의 관문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이 만리장성이라는 용어를 싹 빼리고 천리장성이라고 했지만 조선의 역사에는 분명

만리장성이 있었다.

출처 : 대륙 조선사 연구회
글쓴이 : 지명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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