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지

2008. 10. 8. 18:39자랑스런 선조

경북 경주시 남산동 973 ~974 번지에 위치한 사적 제138호 인 서출지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전하여 내려 오는데, 신라 21대 소지왕이 궁 밖으로 거동하니 쥐가 나타나서 "까마귀 가는 곳을 따라가라"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따라가니 이 연못에 이르렀다. 그 때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고 쓴 글을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는데  그 뒤에 숨었던 중과 궁녀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뒤로 이 연못을 서출지라 하고 매년 정월보름날을 오기일이라하여 감나무 밑에 까마귀에 밥을 주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개견 이인사, 불개 일인사, 연못가에서 노인이 쓴글을 주면서 이렇게 말 한것으로 전하는데 속에든 글을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안보면 한 사람이 죽는다, 두 사람은 중과 궁녀를 뜻함이었고, 한 사람은 왕을 말 함이라, 목숨을 구한 쥐와, 까마귀,와 노인 ~~~~~~~~(서출지 안내판에 쓰여져 있음)

서출지에 살고 있는 자라들이 햇볕을 받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연꽃이 피면 더욱 아름답게 보이리라, 지난 해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올해의 연잎이 돋아 나고 있는 풍경 

조선 헌종 5년 (1664) 에 임적이 지은 이요당이 연못과 잘 어울린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연못속의 주추는 화강암으로 세운것일까?

선비가 아니라도 툇마루에 앉아 명상에 잠겨 보고 풍류가 곁들어 지면 더욱 돋보이겠지?.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

여러 각도에서 본 이요당, 임적은 어떤 사람일까?

서출지에 비친 이요당의 모습도 볼만하네~~~~

서출지에서 자라고 있는 방두사니(사투리 겠지), 부들(경상도에서 이렇게 부름), 연꽃등이 그림자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수백살의 나이를 먹었을 배롱나무 죽은 나무도 무슨 나무였을까?    죽었다고 보여지는 고목이 배롱나무 (백일홍) 자세히 보고 올껄 ~~~~~~~~ 

이리 저리 다시 보면서 한장 

 

 

향나무 두 그루가 정답게 부둥켜 안고 있구나~~~~~ 아랫도리를 보니 수백년을 넘었을듯 한데..... 

 任適 ~ 백과 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되었는데 그렇다면 이요당을 지은년도가 1664년 이라 이때는 태어 나지도 않았는데 동명이인일까?

1685(숙종 11)∼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도언(道彦), 호는 노은(老隱). 참판 의백(義伯)의 증손으로,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양성현감 등을 거쳐, 1725년(영조 1) 함흥판관이 되어 2년간 재직하다가 실정을 탄핵받아 관직을 떠났다.

그 뒤 벼슬에 뜻을 버리고 오직 유가경전(儒家經傳)은 물론, 음양상률(陰陽象律)·의방복서(醫方卜筮)·전곡갑병(錢穀甲兵)·산천도리(山川道里) 등 다방면으로 서적을 섭렵, 이치를 궁구하여 이에 박통하였으며, 함흥판관으로 있을 때는 특히 치리(治理)와 교도(敎導)에 힘써 송사가 없었다 한다.

조행(操行 : 몸가짐의 온갖 행실)이 고결하고 재리(財利)를 멀리하여, 그가 죽었을 때는 염장(殮葬 : 죽은 자를 염하고 장례를 치름)의 비용이 없어 남에게 빌려 쓸 정도였다. 시와 문장이 다 볼만하였으며, 저서로 ≪노은집≫이 있다.(경주에는 볼것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