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의 유래-펌글

2009. 7. 26. 18:15유머랑

춘추시대 말기의 월(越)나라의 왕(재위 BC 496∼BC 465)은 구천(勾踐)은 아버지 윤상(允常)이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자마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싸웠다. 오왕 합려는 월나라를 없애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침략을 강행하였으나 범려(范蠡)의 계책으로 오군은 대패하고, 합려는 이 때의 부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부친의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와신;臥薪), 오자서(伍子胥)의 도움을 받아, 보좌에 올라서 다시 월나라를 쳐들어가고 이번에는 월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충신 범려의 진언에 따라 빼어난 미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치면서 항복을 청한다. 이 때 오자서는 부차에게 구천을 죽일 것을 적극 간하지만, 서시와 같은 빼어난 미인까지 받친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 선에서 끝내고 만다. 부차는 오자서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것을 수용한 것이다. 2년 후인 BC 494년에 구천은 부차에게 패배하여 회계산(會稽山)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가 되었다.

 

그 후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상담:嘗膽)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이것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故事)이다.

 

거짓된 충성심을 보여주고,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국정을 범려에게 맡기려고 하지만 범려는 문종을 적극 추천한다. 구천은 범려와 문종의 보좌를 받아, 복수할 저력을 키우면서 밖으로는 부차에 순종적인 모습만 보여줘 방심을 유도 한다. 더욱이 범려는 뇌물을 계속 보낸 백비에게는 부차와 오자서 사이를 이간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부차는 오자서를 죽이게 되고, 월나라 군대는 부차가 출병한 틈을 타 오나라를 급습하여, 황자를 죽이고 4년 후 부차를 궁지에 몰아넣어 자살하게 하였으며, 서주(徐州)에서 제후와 회맹(會盟)하여 패자(覇者)가 되었다.

 

대업이 달성되어 득의양양 한 구천을 보고 범려는 월나라를 탈출한다. 범려는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 토사구팽;兎死狗烹; 새사냥이 끝나면 활이 필요없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게 된다.” 이야기를 하며, 월왕은 고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없는 상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병을 칭하고 은퇴를 하라고 권유한다. 그의 권유에 따라 조정에 출사를 하지 않자 문종은 반역을 의심받아 마침내 문종은 자살하게 된다.

 

최근에 후베이성[湖北省] 장링[江陵]의 망산일호초묘(望山一號楚墓)에서 ‘월왕구천자작용검(越王勾踐自作用劍)’이라는 명(銘)이 있는 아름다운 동검(銅劍)이 출토되었다.

 

 

 

 

 

                                                                 越王勾踐自作用劍

 

한편, 서시는 관련된 여러 가지의 고사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침어(沈魚)이다. 어릴 때부터 천성이 곱고, 용모가 아름다워 항상 부러움을 샀는데, 하루는 강가에서 빨래는 하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췄다. 이때 물고기가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해서 지어진 고사이다. 현재 서시의 출생지라고 알려진 저장 성의 제기시에는 서시가 빨래하던 완사(浣紗)라는 곳이 전설의 그곳이라며, 관광지로 정해 놓고 있다.

 

 

西施浣纱图

 

<장자>에는 효빈(效嚬)의 고사가 전해 내려오는데, 속 병이 있던, 서시는 아미를 찌푸리고 걷고 있었는데, 이 마을의 추녀도 잔뜩 찌푸린 채 따라 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두문불출하며, 외면을 받았다는 고사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월나라의 명신(名臣) 범려(范蠡)의 위와 같이 말이 전해져, 한신이 유방에게 죽음을 당하면서 범려가 남긴 이 구절을 말했다고 한다. 한신(韓信)은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했으나,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항우의 장수였던 종리매(鐘離眛)가 옛 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일찍이 전투에서 종리매에게 괴로움을 당했던 유방은 종리매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가 초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자,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 친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어 유방은 진평(陳平)에게 상의했다. 진평의 책략에 따라 유방을 운몽(雲夢)에 행차하고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평소에 술수가 남다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천자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정말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은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 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래서 화가 난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도 잡혀 삶아지며, 높이 나는 새도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당함이로다[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오월동주(吳越同舟)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말로 춘추전국시대 齊(제)나라의 병법가인 孫子(손자)가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 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서로 원수지간이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하여는 부득이 협력을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유사한 말로는 怏宿之間(앙숙지간), 犬猿之間(견원지간), 怏宿之間(앙숙지간) 등이 있다.